참빛교회 유지훈 담임목사

    최근 한국 뉴스를 접하다 보면 이해하기 어렵고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들이 많이 생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건들은 그냥 그런가보다 라고 넘길 수 있겠지만 또 다른 사건들은 화가 나게 하며 공분을 사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선생님들을 향한 학부모들의 갑질 사건들이 그렇습니다. 최근에 가장 논란되는 사건 중 하나는 어느 교육청 직원이 자신의 아이 선생님을 아동학대로 고발하여 해고를 당하게 하였고 그 후임으로 온 선생님에게는 자기 아이를 이렇게 대해 달라며 여러 가지 지침을 이메일로 보낸 사건입니다. 그 내용 가운데는 자신의 아이는 왕의 DNA를 가졌으니 왕자를 대하듯이 대해 달라는 요구도 포함되었습니다. 아동학대로 고발당한 선생님은 조사 결과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정이 나고 다시 보직하였으며 해당 학부모는 자신의 교육청 직위에서 해임되었습니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고 말이 안 나오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고 지금도 논란이 수그러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과연 나는 이러한 “갑질”이나 교만으로부터 자유로운가입니다. 앞에 소개한 사건의 당사자나 자신이 KAIST에서 MBA를 받았다며 교사는 얼마나 배웠냐며 아이의 교사를 무시했던 사건 같이 심하게 하지는 않겠지만 우리 모두에게도 우리 아이는 최고이고 나는 최고이고 누군가에게 그런 심리를 보상받아야 한다는 권리가 있다고 믿는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러한 자만의 마음은 인간 모두에게 있는 마음이고 성경은 이것이 죄의 근본이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최초의 죄는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선악과의 사건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과를 먹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 과실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라는 뱀의 유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내 삶의 주권자, 그리고 선과 악의 정의를 내리는 분이 하나님이셔야 하는데 하나님을 버리고 내가 스스로 주권자가 되고 선악을 결정하겠다는 교만의 마음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인류 역사를 보면 다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 자신의 위대함을 들어내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바벨탑 사건이 나오는데 탑을 하늘까지 쌓아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려는 인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 바벨은 바벨론으로 이어지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과 늘 대적 되는 나라를 상징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벨”이라는 단어의 뜻이 “혼돈”인데 천지창조에서 하나님께서 질서를 만드신 것을 다시 무너뜨리고 “혼돈”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 창세기 1:2 참고)

 
    교만, 자만이야말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내 자신이 최고이니 그 누구도 내 위에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을 포함) 누구든지 자기를 섬겨야 되고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증오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거만한 모든 사람을 역겨워하시니, 그들은 틀림없이 벌을 받을 것이다” (잠언 16:5, 새번역).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 교만입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들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시편 149:4, 개역개정). 주님의 축복의 삶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바로 겸손입니다. 우리는 교만을 내려 놓고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더 겸손해야지라고 생각할는 일 자체가 교만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C.S. Lewis 는 우리가 교만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살 것이라고 하는 그 순간이 우리가 가장 교만한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내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나 자신을 낮게 생각해야지 라고 다짐하는 그 순간도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순간이 교만의 순간인 이유는 이 상황의 중심에도 내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겸손해야지 라는 생각 가운데도 초점은 바로 내 자신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자기 자신을 낮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못해 라고 생각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낮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덜 하는 것이 겸손의 모습입니다. 나에게 맞추어진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 바로 겸손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빌립보서 2:4, 새번역). 내 생각을 줄이고 남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겸손의 마음이고 또 그리스도의 마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남의 입장을 생각해 보고 서로의 이득을 위해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성숙한 자의 모습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가 다 우리의 입장과 우리의 이득을 내려놓고 서로를 조금이라도 배려하는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교만의 바벨론의 모습과는 대조되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고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삶을 가능케 하신 분이 계십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의 영광을 내려놓고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신 분.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하늘 영광을 내려놓고 우리를 위하여 사신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면 우리도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 분의 삶을 이 세상에 비추는 것이 바로 진정한 겸손의 모습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게 말한 것처럼 이런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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