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光復)은 빛을 다시 찾았다는 의미이다. 8월15일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이 패망하면서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나라를 찾게 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을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다. 1949년 국경일을 정하는 국무회의에서 이 두 날을 기념하기 위해 8월 15일을 광복절로 정하고 국경일로 지정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본은 당시 대한제국이었던 우리나라를 없애고 ‘식민지 조선’으로 다스렸다. 일제강점기였던 이 시기에 세계는 일본, 독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미국, 소련, 영국 등이 이끄는 ‘연합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벌였다. 결국 연합국의 승리로 전쟁은 막을 내렸고, 전쟁에서 진 나라가 다스리던 식민지 국가는 원래의 자주독립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광복은 연합국의 승리 덕분만은 아니다. 일제의 침략을 인정하지 않고 희생을 무릎 쓰며 전개한 독립운동의 결실이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지 않았다면 연합군이 승리했더라도 독립하지 못했거나 광복이 더 늦어졌을 것이다. 


     이처럼 선열들의 희생으로 일궈낸 광복이 78주년 맞아 뉴욕 월스트리트를 상징하는 ‘돌진하는 황소상’에서 태극기 게양식이 지난 14일 개최되었다. 돌진하는 황소상이 있는 맨해튼 볼링그린파크는 1783년 조지 워싱턴 장군이 이끄는 미국 독립군이 뉴욕에서 영국의 군대를 몰아낸 뒤 별이 13개 그려진 최초의 미국 국기를 게양한 곳이기 때문에 볼링그린파크에 태극기를 게양한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 국기 게양식에 참석한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뉴욕은 미국의 금융수도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금융수도이며, 특히 볼링그린파크에서 국기를 게양한다는 건 전 세계인에게 강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한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맨해튼의 코리아타운과 퀸즈의 플러싱 지역을 언급하며 “한인 커뮤니티는 뉴욕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라고도 했다.  이어 “뉴욕시를 고향으로 삼는 10만 명의 한인과 한국 이민자들의 특별한 공로를 표창한다”고 했다. 또, 자신의 공식 소셜미디어에 이번 행사의 생중계 영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한인의 높아진 위상을 실감케 하는 하루였다.  


      이 행사를 주관한 재미차세대협회 (AAYC)는 2017년 뉴저지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계 학생에 대한 교사의 인종차별 행위에 대처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2021년 뉴저지주를 설득해 미국 50개주 가운데 최초로 한복의 날을 선포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미국 경제인뿐 아니라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월스트리트에서 광복절을 알리자는 취지로 2021년부터 매년 태극기 게양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미국이라고 해도 광복절을 대하는 콜로라도의 모습은 다소 열악해 보인다. 필자는 지난 18년 동안 매년 덴버지역에서 열리는 광복절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왔다. 대부분 노인회가 후원하고 한인회가 주최가 되어 열렸던 것 같다. 하지만 늘 아쉬웠던 점이 행사장과 참여도였다.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한인회는 한인회관이 없어지고 난 뒤로 삼일절이나 광복절 기념식을 하기 위해서 이곳 저곳을 전전해야 했다. 그나마 있던 노인회관도 팔렸고, 노우회관은 아예 오픈 할 생각도 없으니, 한인회는 기념 행사를 하려면 장소부터 섭외해야 하는 떠돌이 신세나 다름없다. 예전에는 노인회관에라도 모여서 삼일절, 광복절, 떡국잔치, 추석잔치라도 했지만 이제는 행사를 할 만한 장소가 없다. 간신히 장소를 마련했다고 해도 교민들의 호응도도 문제다. 광복절 행사를 한다고 신문에 알림소식으로 나갔지만, 대부분이 본인들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같다. 


      4년 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마스크 부족사태가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때 주간포커스에 마스크를 무료 배포한다는 기사가 나갔던 적이 있다. 신문이 배포되자마자 신문사의 전화통에 불이 날 정도로 전화가 걸려 왔고, 신문 배포 3시간 만에 마스크는 동이 났다. 미처 신문이 배달되지 못한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돌아가지 못했을 정도로 광고 효과는 엄청났었다. 이번에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다는 광고도 나갔다. 그러나 이번 행사에 참석해보니, 한인사회의 반응은 차가웠다. 한인회에서 초청한 인사들만 참석한 분위기였다. 자발적으로 기념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덴버지역뿐만이 아니다. 몇 주 전 콜로라도 스프링스 메모리얼 공원에서 열린 한국전 정전 70주년 기념식에도 한인사회의 참여도는 낮았다. 오히려 참전용사와 가족들, 미국사회의 관심이 더 컸던 것 같아서 씁쓸했다. 지금까지 한인사회 대부분의 행사가 이런 식이었다. 주최측은 행사를 준비하는 것도 번거로운데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참석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모자라, 참석 해달라고 사정하는 경우도 공공연하게 있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인회와 노인회, 노우회는 법정소송과 분열을 반복하면서 한인사회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충분한 구실을 제공해 왔다. 이런 불신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민사회에 살고 있는 한, 한인회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 탄탄한 한인회가 만들어져야 이민사회에서 한인사회의 위상을 정립해 나갈 수 있으며, 대외적으로도 한인사회의 저력을 과시할 수 있다. 나아가 뉴욕의 차세대협회와 같은 젊은 단체들이 이곳에서 가지를 뻗을 수 있는 초석을 다질 수 있다. 한인회가 존재해야 삼일절, 광복절, 명절 행사를 그나마 매년 할 수 있다. 우리는 자녀세대에게 대한민국의 역사와 한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줄 의무가 있다. 집에서 가르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사와 정신을 경험할 수 있는 행사가 광복절과 삼일절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에는 자녀들과 참석해보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한인회와 한인단체, 교민사회 모두가 합심하여 콜로라도 주 청사 앞에서 광복절을 기념하며 태극기 게양식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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