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선교회 조완길 목사

   나는 1984년부터 1995년 까지 시우디아라비아에서 교민 교회를 목회하며 선교사로 사역을 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사막의 나라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사막보다는 메마른 광야가 더 많은 나라다. 도시를 벗어나면 끝없이 펼처져 있는 광야를 만나게 된다. 광야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강유량이 적은 것이다. 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숲과 초지가 사라지고, 사막화 되고 있다. 광야에는 기온차가 심하다. 낮에는 태양빛이 강하고,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서 추위가 엄습하는 곳이다. 광야에는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을 구하기가 어렵다. 광야에는 길이 없다. 광야 생활에 익숙한 베두인들은 낮에는 태양과 밤에는 별 자리를 보면서 방향을 정하고 이동하기 때문에 길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광야의 지리를 모르는 사람이 깊은 광야에 들어갈 경우 매우 위험하다. 


   광야는 자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21세기 정보 사회를 살아 가고 있는 현대인의 마음속에도 광야가 있다. 수 많은 정보를 공유하며, 최첨단 과학과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지만 마음은 광야와 같이 메말라 가고 있다. 현대인은 군중속에서 고독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는 고독사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하덕규 목사가 작사 작곡한 ‘가시나무’ 가 우리의 병든 자아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내속엔내가너무도많아당신의쉴곳없네, 참회의 서정을 담고 있는 ‘가시나무’에 반복해서 나오는 노래말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이다. 이런 사람의 정서는 광야의 날씨와 같아서 환경에 따라 불쾌지수가 급상승 하기도 하고, 급강하 하기도 한다. 최근에 미국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인종 차별의 문제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총기 사고도 타락하고 메마른 광야 같은 심성에서 시작된 사회악인 것이다. 


   그러나 광야는 영적으로 연단과 은혜의 자리다. 그곳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광야의 히브리어 원문을 찾아보니  ‘미드바르’로 되어 있다. 이 단어의 어원은 ‘말하다 ’라는 뜻을 가진 ‘다바르’이며, 말하는 도구로서의 ‘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시내 광야에서 40년 동안 목자로 연단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모세에게 광야는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은혜의 자리였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심으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후 광야는 단순한 빈들이 아니며, 고난과 고독의 자리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됨을 확증해 주는 율법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 주시는 성막을 받았다(출 29:45,46; 민 5:3). 그들이 광야에서 받은 율법과 성막은 예수그리스도와 교회를 예표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광야에서 생활한 것을 교회 생활이라고 설명했다(행7:38).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도 광야를 경험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 어렸을 때에 베들레험 주위의 광야에서 목동의 삶을 살았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 “사망의음침한골짜기를” 지나는 것같은 큰 생명의 위험에 처했던경우가 성경에 두번 나온다.  하나는 젊었을때,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하자, 광야로, 이웃나라로 도망하던 때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늙었을 때,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므로 광야로 도망갔던시절이다. 다윗은 인생의 말년에압살롬으로부터 도망할 때의심정을 시23편에 담고 있다. “여호와는나의목자시니내게부족함이없으리로다”(1)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2)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4) 그는 광야를 걸으며 하나님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우월하신분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모든 것 위에 우월하신 하나님은 현재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시다. The Lord IS my shepherd. 다윗은 과거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고 말하지 않았다.  또한 미래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현존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바로 이 순간에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다.


   우월하시고, 현존하시는 하나님은 또한 개인적으로 친밀하신 분이시다.  다윗은 하나님은 한 목자라고 말하지 않고 나의 목자라고 고백했다.  (The Scripture does not say, ‘The Lord is a shepherd’, but it says, ‘The Lord is MY shepherd.’)  시편 23에는 우리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모두 ‘나’이다. ‘나’라는 표현이 17번 나온다. 하나님과의 개인적 친밀감이 강조되어 있다.  구원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셔야 가능해진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 되셔야 죄 사함의 은혜를 입게 된다. 내 이웃의 하나님, 내 가족의 하나님이라는 말로 죄 사함받고 구원받지 못한다. 신앙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친구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웃의 하나님의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돌보심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다윗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에게 많은 복과 승리를 안겨주셨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셨기 때문에 그는 삶의 고비마다 하나님의 친밀하신 인도하심과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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