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선교회 조완길 목사

    인간은 문화적인 존재다. 우리는 문화를 통해 인간적인 가치와 지식을 배우고 전달한다. 문화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며, 우리가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우리는 문화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 예술을 감상하며, 언어를 사용한다. 문화는 우리가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서로의 관계를 형성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행복한 삶을 위해서 입고, 먹고, 거주할 공간이 필요하다. 의식주 문제는 역사속에서 생리적인 욕구에 필요한 문화로 발전되었다. 


의상문화 :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후 하나님을 피해 나무 숲속에서 처음으로 한 일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의상 문화다. 이어령 선생은 “옷은 인간의 역사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의 낙원에서 추방되자마자 의상을 걸치는 습속이 생겼고, 그 순간부터 인생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전 세계 2만4천3백 부족이 입고 있는 전통의상과, 세련된 패션 의상들은 아담의 범죄와 더불어 세상에 들어온 타락문화의 산물이다. 범죄한 후 벗은 것이 부끄러워 하나님의 시선을 피해 숨은 이들에게 하나님은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다.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물이 죽어야만 했다. 이 짐승의 죽음은 속죄 제사를 의미하며, 동시에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옷은 몸을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고대 근동 사회에서 인간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나타내거나 외적인 멋을 위해서 입기도 했다. 아담과 하와는 가죽옷을 볼 때마다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뭇잎 옷을 벗기시고 가죽옷을 입혀주셨듯이, 선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고 말씀하셨다(슥 3:4). 신약에서 아름다운 옷은 예복을 의미한다. 마22장에는 왕의 아들 혼인 잔치 비유가 소개되고 있다. 왕이 배설한 혼인 잔치에 초청받는 것은 영광이다. 그런데 초청받은 자들이 가지를 않았다. 그래서 사거리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잔치 자리를 채웠다. 그런데 그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자가 있었다. 여기에 소개되는 예복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다. 침례(세례)와 행위다(갈3:27; 계19:8).


음식 문화 : 음식 문화는 그 민족이 처한 환경과 종교적인 관습에 따라서 다양하게 발전이 되었다. 그래서 나라마다 고유한 전통 음식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한국의 김치, 인도의 카레,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미국의 햄버거, 사우디아라비아의 만디와 같은 것이다. 수렵채집 시기에는 생존을 위해 먹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인간의 식욕은 생존의 범위를 넘어서 미식으로 발전이 되었고, 예술로 승화되어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음식이 존재한다. 식도락가가 아니더라도 넓은 세상을 여행하면서 각기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입맛은 혼합 문화를 수용하고 탐식하는 이중적 윤리를 가지고 있다. 음식에 대한 욕구는 결코 죄가 아니다. 그 욕구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고, 적절한 섭취는 건강과 먹는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분수를 넘어서 과도한 행동으로 옮겨질 때 죄악이 될 수 있다. 인류의 비극은 탐식에서 왔다. 그들의 탐심은 단순한 미각의 충동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에서 온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다(마4:4).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말씀을 먹어야 한다. 


주택 문화  : 아담은 에덴을 쫒겨난 후 동굴에서 살았거나 움막을 짓고 살았을 것이다. 수렵채집을 하며 살던 원시인들은 동굴과 움막에서 살았다. 농경사회를 지나 산업 사회가 되면서 주택 문화가 다양하게 발전이 되었다.  창조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고유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창조성을 주셨다. 인간은 이 창조성을 통해 편집을 하게 되고 재창조를 이루게 된다. 타락 이후에도 창조성은 해제되지 않았다. 바벨탑 사건을 살펴보면, 타락한 인간이 집단주의와 도시화를 시도하였으며, 불안과 위기에서 보호받으려고 했음을 알게 된다. 이름을 크게 하려는 인간의 본능이 민족주의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집중화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바벨탑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에 제한이 있음을 보여주는 예시다. 


    인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완전한 문화를 만들 수 없다.  중세기에 기독교 중심 문화가 쇠퇴하고 인간을 중시하는 인본주의 운동이 일어난 시기가 있었다.  르네상스가 일어난 시기다. 르네상스는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옮겨지는 문예 부흥이다. 그 시기에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알리던 화가들이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그리기 시작했다. 생리적 욕구에 의해서 발전한 문화도 우리의 정체성과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우리는 자신의 문화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다른 문화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인사이트를 얻는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들이 공존하고 상호작용함으로써 우리는 서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문화적 다양성은 우리 사회에 풍요로움을 제공하는 동시에, 상호 이해와 관용, 포용을 필요로 한다. 서로 다른 문화 간의 대화와 교류를 통해 편견과 편협한 사고를 극복하고, 상호 존중과 협력을 통해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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