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나 이런 말하기 진짜 싫은데, 난 아저씨랑 같이 있는 게 너무 좋단 말이야. 나한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 사람이랑, 내가 배고픈지 졸린지 심심한지 그런 관심 주는 사람이랑 나 처음 있어 봤단 말이야. 제발 가지 마." ENA 드라마 '유괴의 날' 11회에서 열한 살 소녀 최로희(유나)는 유괴범인 김명준(윤계상)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두 사람이 숨어 지내던 곳에 경찰이 들이닥치고 명준이 체포에 순순히 응하려 하자 로희는 함께 도망치자고 애원한다. 지난달 25일 종영한 '유괴의 날'은 유괴범인 명준과 그에게 유괴당한 아이 로희가 모순적이게도 결국 서로의 가족이 되는 과정을 다룸으로써 과거와 달라진 가족의 의미를 보여준다. 드라마는 명준이 감옥에서 죗값을 치르고 로희는 명준의 딸 희애와 자매가 되어 같은 머리핀을 꽂고 등교하면서 마무리된다. 

    올해 8월 종영한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남남' 역시 가족이 되는 것은 각자의 선택에 의한 것임을 보여줬다. 이 드라마는 미혼모로 아이를 낳아 키운 엄마 김은미(전혜진)와 딸 김진희(최수영) 모녀의 앞에 엄마의 고교생 시절 연인이자 딸의 친아버지 박진홍(안재욱)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은미는 진희가 진홍의 딸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진홍을 자기 딸의 아버지가 아닌 자신의 연인으로만 대한다. 진홍의 부모는 독신으로 살아온 아들 진홍에게 딸 진희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뒤늦게 나타나 친자 확인 검사를 요구하고 은미 모녀의 삶에 끼어들려 하는데, 은미는 이들의 간섭을 단칼에 거절한다. 반면에 은미는 고교생 시절 자신을 거둬 키워준 동창 미정의 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따른다. 미정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은미는 상주로 내내 장례식장을 지키며 자식의 도리를 한다. 진홍의 부모가 가족은 '핏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은미는 가족이 서로를 향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다고 믿는다는 면에서 대비된다. 

    이처럼 올해 드라마들에 나타난 가족의 모습은 달라진 사회상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통적으로 가족이 탄생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결혼과 출산이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은 이제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 됐고, 개인의 결정에 따라 가족을 다양한 모습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인식이 드라마에도 반영됐다. 두 드라마를 향한 시청자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선풍적인 인기까지는 아닐지라도 드라마 종반부로 갈수록 시청률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유괴의 날'은 첫 회 1.8%의 시청률로 출발했으나 마지막 방송은 5.2%로 시청률이 세 배 가까이 치솟았다. 같은 시간대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보다도 시청률이 높았다. 유괴범과 피해자가 가족이 되는 서사에 거부감이 든다는 반응은 찾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