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부 비판도 통째 삭제

    “취임 이후로 가장 편안하고 기쁜 날이 아닌가 생각한다.”  취임 후 세 번째 국회 방문이었던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이다. 약 3시간 40분간 이어진 대통령의 국회 체류 풍경은 지난 두 차례와는 확실히 달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대화하고, 본회의장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그와 악수하고, 나가면서 또 악수를 했다. 비윤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이 내놓은 이날의 총평은 이랬다. “이 대표와 악수하고, 경청하려는 태도는 엄청난 변화 시그널이다. 대통령의 변화는 여당이 살아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인데, 오늘은 그런 모습을 느꼈다.” 


    시정 연설 내용도 앞선 두 번과 달랐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연설문 속에 등장하지 않았다. 앞선 두 연설 때 “정치적 목적이 앞선 방만한 재정 운용”(2022년 10월)이라거나 “북한과의 형식적 평화”(2022년 5월)라고 날을 세운 것과 딴판이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번에도 참모들이 준비한 초안엔 전 정부의 방만 재정과 가계부채 방치, 어려움을 겪은 한·일 관계에 대한 지적이 담겼다. 하지만 윤 대통령 본인이 “지난 정부에 대한 언급은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고, 직접 내용을 고쳤다고 한다. 27분간의 시정연설 대부분을 경제 문제에 할애하며 예산안 처리를 위한 국회의 초당적 협력을 당부했다. 가장 많이 쓴 단어도 경제(23회)였고, 정부와 국민(각 22회) 순이었다.  국회(10회)와 협력(8회), 협조(5회)도 자주 언급했다.  


    야당의 비판 타깃이 되고 있는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민간과 시장에서 연구 개발 투자를 하기 어려운 기초 원천 기술과 차세대 기술 역량을 키우는 데 써야 하는 것”이라며 “첨단 AI(인공지능)ㆍ디지털ㆍ바이오ㆍ양자ㆍ우주ㆍ차세대 원자력 등에 대한 R&D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고 주장했다. 몸은 낮췄지만, 시정 연설 속 국정 기조는 지금까지와 별로 차이가 없었다. “돈을 풀라”는 야당 주장에 맞서 건전 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재천명 한 게 대표적이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은 정책기조나 국정 방향의 변화 보다는 국회와 야당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에 방점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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