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 매년 9월부터 10월은 무척 바쁜 시기이다. 개인적인 일도 일이지만 신문사 일은 더 많기 때문이다. 매주 136페이지나 되는 신문을 만들다 보면 월, 화는 신문 제작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신문이 발행되는 목요일이라도 곧바로 다음 주 신문 제작을 앞둔 중압감이 밀려온다. 특히 최근 몇 달 동안은 골프대회와 업소록 제작 업무가 추가되면서 여간 벅찬 게 아니었다. 이런 와중에 한국까지 다녀왔으니, 몸이 열 개라도 소화하기 힘든 일정을 보냈다. 여기에 두 아이의 생일파티와 동요대회까지 겹치면서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최고조에 달했다. 


      한국을 가기 전에 동요대회 트로피를 제작했다. 그런데 트로피 제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격이 많이 올랐고, 트로피에 새겨야 하는 로고와 문구를 일일이 검토해야 하는 작업 시간도 생각보다 꽤 걸렸다. 상장을 만들 종이를 사기위해 집 근처의 오피스 디포에 갔었는데, 얼마전에 폐업을 했다고 한다. 이 또한 어김없이 두 번 걸음을 해야 했다. 마이크 시스템을 점검하면서 새 건전지를 사러 갔었을 때였다. 정확한 전압이 기억나지 않아 이 또한 두 번 걸음을 해야 했다. 집안 일에 신문사 일까지, 할 일은 태산인데 왜 이렇게 돈도 안되는 이런 일을 벌여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필자는 지난 몇 주동안 계속해서 툴툴거렸다.


      대회 전날까지 아이들에게 일일이 리허설 시간을 공지하고, 행사 순서지와 안내문을 만들고 문화센터 청소를 시작했다. 동요대회 배너를 달고, 심사위원을 위한 책상을 정리하면서 테이블보도 씌웠다. 문화센터 한켠에 놓여있던 의자 70개를 꺼내와서 가지런히 배치해 놓았다. 그리고 혹시나 필요할까봐 코스코에 가서 물 한박스를 사서 문화센터까지 들고 내려가느라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 이때까지도 필자는 내가 미첬지 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동요대회는 2024년도 콜로라도 한인 업소록의 인쇄 일정과 겹쳤다. 한국의 인쇄소와 작업 진행을 체크 해야해서 대회 며칠 전부터 하루에 서너 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대회 당일에도 정신이 몽롱해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동요대회는 포커스 문화센터에서 열리니까 대관료를 지불할 필요도 없고 청소년 문화축제보다 간단한 행사라고 생각해서 개최할 때마다 지출은 후원 없이 필자가 책임을 져왔다. 그렇다 보니 동요대회는 괜히 돈 쓰는 행사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필자의 이러한 불평불만과 피곤함은 동요대회가 열리는 순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마치 마술처럼 말이다. 출전자들과 응원 나온 가족들로 인해 문화센터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한명한명 모두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해왔는지, 매 순간마다 감동이 밀려왔다. 3시에 본선이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1시부터 와서 리허설을 하는 팀도 있어, 리허설도 본선 경연만큼이나 그 열기가 뜨거웠다. 참가자들의 연령이 대부분 10세 미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느 프로 선수들 못지않게 곱게 차려 입은 무대복과 흐트러짐 없는 무대 매너는 대견하기까지 했다.


     이중 가장 고생스러워 보이는 것은 단연 단체팀이었다. 똑같이 무대의상을 맞춰 입고, 안무를 통일하고, 아이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져야만 만들어지는 것이 단체팀이다. 이들을 지도한 선생님들의 노력이 얼마나 큰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16번째 참가자로 출전한 스프링스 통합한국학교 단체팀인 라온팀의 공연은 독도는 우리 땅이었다. 단체로 옷을 맞춰 입고 온 초록색 티셔츠의 등판에는 독도는 우리 땅을 한 자 한 자 붙였다. 준비된 태극기를 흔들 때마다 관중들은 하나가 되어 함성이 울려 퍼졌다. 참가자와 관객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감동과 뿌듯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순간 지난 한 달동안 툴툴거렸던 필자가 갑자기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필자가 불만을 쏟아내고 있을 때 우리 아이들은 이 대회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을까, 그리고 엄마들의 노력도 얼마나 부산했을까 하는 생각에 숙연해졌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 필자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즐거운 마음으로 행사에 협조해 준 심사위원들, 사회자, 반주자, 그리고 포커스 직원들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발음과 음정으로 한국 동요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들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필자에게 뜨거운 감동을 안겨준 참가자 한명한명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요즘 아이돌 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무슨 노래인지 전혀 모르겠고, 춤만 겨우 눈에 들어온다. 가사의 의미를 곱씹으며 들었던 아버지 세대의 트로트, 우리 세대의 발라드와는 천지 차이다. 이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자녀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더욱 그렇다. 점차 미국인이 되어 가는 아이들과 한국의 정서를 꼬옥 안고 사는 부모들은 세월이 갈수록 서먹한 사이가 되어 버린다. 설령 함께 캠핑을 간다고 해도 아이폰과 아이패드와 같은 신기술에 정신이 팔려 대화할 시간이 거의 없다.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관계가 더 멀어지기 전에 할 수 있는 무엇을 찾아야 한다. 한국 노래를 같이 부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동요대회야말로 부모와 자녀간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되어 줄 것이다.


      이번 동요대회는 팬데믹으로 인해 4년 만에 개최되었다. 필자는 2019 년도에 마지막으로 열렸던 동요대회의 감동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행사를 마치고, “이런 멋진 대회를 열어주어서 너무 감사하다. 아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한 한 참가자의 어머니로 인해, 행사 준비 기간내내 툴툴거렸던 시간들이 떠올라 또한번 송구스러웠다. 주간포커스 신문사는 지난 15년동안 4세부터 6학년까지는 동요대회, 중·고·대학생을 위해서는 청소년 문화축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명실공히 콜로라도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문화축제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이런 대회에서 만들어진 경험과 추억이 훗날 부모 세대와 아이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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