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어릴 적, 1970년대 초반엔 마을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습니다. “새벽 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얼마나 들었던지 이 노래 안 부르고 안 들은지 벌써 40년이 넘었는데 다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릴적 배가 너무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하고 방바닥에 누워 신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방에 청소하러 들어오시던 어머니가 다들 학교 간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방에 들어오시다가 누워 있는 저를 발견하신 겁니다. 잠시 당황하시더니만, 왜 학교에 안 가고 여기 누워있느냐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나, 배 아파!”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아프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아파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학교에 가서 죽으라고 저를 집 밖으로 내쫓으셨습니다. 아픈 배를 움켜쥐고 학교를 가는데, 아픈 배도 배였지만 수업 중간에 들어가는 게 창피해서 어떻게 몰래 내 자리로 들어가나 그걸 더 걱정하며 학교에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제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삼촌들의 말에 합리적인 의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더니 그 말이 참말이었나 보다 생각한 것입니다. 그 일로 저는 한 가지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얻었습니다. 학교란 곳은 아파도 가야만 하는 곳, 죽더라도 거기 가서 죽어야 하는 곳이란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학교에서 새마을 운동으로 빗자루 들고 학교에 나오라는 선생님의 호출이 있었습니다. 일요일이었는데 학교에 오라고 한 것입니다. 이미 어머니에게 학교는 무조건 가야 하는 곳으로 오리엔테이션이 되어 있던 터라 빗자루 어깨에 메고 집을 나서려고 하던 그 때에, 어머니가 물으셨습니다.


     “너 어디 가니?” 아주 당당하게 목에 힘을 주며 쿨~하게 답했습니다. “학교 가지!”저는 그 때 엄마가 칭찬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들이 이제 제대로 사는구나! 인정받을 줄 알았는데, 우와~ 돌아온건 욕이었습니다. 세상에 처음 들어보는 욕도 있었습니다. 이 삐리리 같은 X야, 야 이 XXXX야, 주일에 교회를 가야지 그래 무슨 학교를 간다고 그러느냐고 얼마나 화를 내시던지, 빗자루를 내던지고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온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 또 배운 교훈이 있습니다. 학교는 아파도 가야 하는 곳이지만, 교회는 죽어도 가야 하는 곳이란 사실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참 잘 한 일 중 하나가 예수님을 잘 믿으라고 가르친 일일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어서 목사가 되었으니 참 잘 가르치고 배운 거지요. 그런데 조금 성장을 하고 청년이 되었을 때, 성경을 읽는데 이상한 부분이 있더란 말입니다. 오늘 본문 29절 말씀입니다.“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어? 이건 뭐지!! 제 상식으론 여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믿으라!” 왜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으라 하지 않으시고, 내게 배우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까?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하는 것과 잘 배우는 것은 같은 건가? 다른 건가? 같은 거라면 예수님께 무엇을 배워야 할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예수님께 배워야 하는 것이고, 그 배워야 하는 중요한 과목으로 두 개의 필수과목이 있는데 하나는 온유학이고, 하나는 겸손학이었습니다. 온유라 함은 온(溫), 따스할 온에 유(柔), 부드러울 유를 써서 따스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헬라어로는‘프라우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거기에 강하다라는 의미가 플러스된 뜻이었습니다. 부드럽고 따사로운데 힘이 있어서 사람들을 감동시켜 그들을 움직이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늘 온유함으로 가득하셨습니다. 이 온유는 앤드류 머리의 책 『겸손』에서는 겸손의 열매로 이야기합니다. 결국 겸손, 헬라어로‘타페이노스’란 말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상태를 뜻하는 말인데,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천국 복음을 증거하시면서 매일 매 순간 한 시도 빼놓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힘으로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부드럽고 따스하게 사람들을 감동시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데 이것을 우리는 예수님께 배워야 한다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인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잘 믿기는 하였지만, 50년째 온유학과 겸손학에서 낙제를 한 것 같습니다. 상담은 20년 밖에 안 되는데도 전문가란 말을 듣는데, 신앙생활은 50년을 가까이 해도 아내나 아이들한테 아빠, 겸손의 전문가신데요. 온유의 대가세요. 이런 말을 한 번도 못 들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드러워지기. 어제보다 오늘 좀 더 따스해지기. 그래서 하나님을 매 순간 의지하며 겸손히 사람들을 감동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가정과 교회, 이 나라 이 땅을 이루어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주님을 잘 믿음으로,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수님께 온유한 삶을 배워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는 상태로 늘 살아가는 겸손함을 예수님께 배워 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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