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비전교회 이동훈 공동 담임목사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사자성어 중에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을 때 쓰는 말입니다.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니던 다윗도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원수의 나라 블레셋으로 망명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사울 왕이 다윗을 추격하는 일을 멈춥니다. 당장은 사울 왕의 손에서 벗어 난 듯 보였습니다. 아기스 왕으로부터 블레셋에서 살 곳, 시글락까지 제공받았습니다. 안전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골치 아픈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납니다. 자꾸 죄를 짓습니다. 블레셋에서 살아남기 위한 다윗의 몸부림은 처절했습니다. 한 동안은 그의 몸부림, 곧 그의 열심이 성공한 듯 보였습니다. 그의 열심이 무엇입니까? 자신을 위장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위장 전술입니다. 블레셋에 몸을 숨겼다가 신분이 탈로 나자 미친 사람으로 위장하여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오기도 하고,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로 철저하게 위장하여 신임을 얻고자 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거짓말 전략을 통해 위기를 모면해 보고자 했습니다. 블레셋 시글락에서 살면서 다윗은 블레셋 남쪽 변방에 있는 지방(이스라엘의 대적)들을 침노해 놓고, 아스기 왕이 “오늘은 누구를 침노했느냐?”고 묻자 다윗은 이스라엘의 여러 마을을 침노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다윗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아기스 왕은 다윗이 확실한 자신의 부하가 되었다고 확신하고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동참할 것을 명령합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입니다. 동족과 전쟁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상황적으로 아기스의 명령을 거절할 수도 없는, 자신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난관, 즉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딜레마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런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자신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애굽으로 식솔들을 이끌고 내려갔습니다. 이곳에서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더 큰 위기기 찾아왔습니다. 바로에게 아내 사라를 빼앗길 위기입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처럼 자신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난관이 아브라함에게도 일 순간 찾아온 것입니다. 아기스 왕이 다윗에게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함께 참전해 줄 것을 오청하면서 “그러면 내가 너를 영원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사무엘상 28:2)고 마치 큰 호의나 베풀듯 말을 합니다. 다윗은 적어도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당당히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어떤 위치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습니까? 이방 나라, 그것도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어디서 만나도 쳐 죽였어야 할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를 경호하는 호위대장 노릇이나 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장면입니까? 지금 아기스 왕은 다윗에게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어서 “너를 영원히 나의 머리 지키는 자로 삼겠다.”고 하지만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말 아닙니까?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된 존귀한 자입니다.  


    다윗만 그렇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세상 속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야 할 존귀한 자들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의 이 수치스러운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눈앞의 작은 이익에 급급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존심도 버리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전락한 적은 없습니까?


    블레셋에서 살아남기 위한 다윗의 열심은 처절했습니다. 노력했지만 결과는 최악입니다. 어쩌면 이제까지 다윗은 자신의 열심을 대입시켜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을 대입해서 행동할 때 진퇴양난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실 다윗은 10여년이 넘는 도피생활 속에서 사울 왕의 손아귀에서 자신을 지키시기 위해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일하시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을 체험하며 살아왔습니다. 결국 다윗은 이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났습니까? 하나님의 극적인 개입을 통해 벗어납니다. 아기스 왕이 다윗을 데리고 이스라엘과 전쟁에 나가려고 할 때 아기스 왕의 신하들이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정하신 그 처소(시글락)으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사무엘상 29:4). 아기스 왕을 따라 전쟁터로 나가 속수무책으로 자신의 동족들을 죽여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내 몰린 다윗에게 이 아기스 왕의 신하들의 말은 한마디로 ‘복음’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을 지키시기 위한 극적인 하나님의 개입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드라마틱한 반전 아닙니까?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내 열심, 내 똑똑함, 내 잘남을 의지한 삶이 아니라, 내가 처한 문제를 풀어 가실 답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완전한 열심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어쩌면 다윗처럼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며 어찌할 바를 모를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에 처 박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에도 내가 처한 문제의 답을 풀어나가시기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믿으시고, 나의 신앙 성숙과 승리와 영광의 자리로 나를 이끌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야 마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을 의지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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