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열렸던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해당 종목으로는 리그 오브 레전드, 왕자영요, 하스트톤, 몽삼국, 도타 2, 피파 온라인, 화평정영, 스트리트 파이터 등 8개이다. 제목으로 봐서는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겠고, 그나마 스트리트 파이터 정도만 들어봄직하다. 일부국가에서는 종목 선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으며, 무엇보다 중국내 인기로만 따져서 선정된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이 일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e스포츠는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한국은 스트리트 파이트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그러면서 e스포츠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시각에 많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e스포츠는 쉽게 말하면 컴퓨터 게임이다. 40대 이상이라면 어릴 적 동네 오락실에서 너구리, 갤러그, 테트리스와 같은 오락은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왼손에는 조이스틱을 잡고, 오른손은 버튼을 열심히 눌렀던 그 시절의 전자 오락실은 컴퓨터가 나오면서 PC 방으로 바뀌었고 스틱과 버튼은 자판으로 대치되었다. 그러다가 엑스박스같은 게임 전용기기들이 출시되면서 컨트롤러 콘솔로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렇게 많은 변천사가 진행되었지만 게임들은 여전히 부모님 몰래, 배우자 몰래, 살짝살짝 숨어서 했던, 다소 떳떳하지 못한 분위기 속에서 해왔던 음지 놀이였다. 그 시절 오락실은 동네 껄렁한 형들의 아지트였고, 학교 땡땡이 치면서 가는 불량스러운 장소의 대명사였다. 이런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고 있으면 엄마나 누나 등 온 집안의 어른들이 합심하여 아이들을 잡으러 다녔고, 오락실에서 들킨 아이들은 공부 안 하고 오락만 한다고, 커서 뭐가 되겠냐면서 얼마나 구박을 많이 받았던가. 그러나 이제는 공부 안 하고 오락만 잘해도 대접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지난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2023 리그 오브 레전드(LoL) 챔피언십 결승전, 일명 롤드컵이 열렸다. 참고로 LoL은 277주 연속 PC방 주간 점유율 1위를 지켜온 한국 게임 역사상 가장 흥행한 게임이다. 결승전에서 맞붙은 한국은 중국을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며 ‘소환사의 컵’을 들어 올렸다. 우승을 기원하며 광화문 광장에는 3만명이 모여 응원전을 펼쳤는데 마치 월드컵 한일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응원 열기가 대단했다. 이번 롤드컵은 한국에서 5년 만에 열린데다  류민석 선수가 결승행을 확정지은 뒤 “뉴진스 나와!”라고 외친 한마디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며, 시작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그런 그의 바람대로 그룹 뉴진스의 오프닝 무대가 펼쳐지면서 전세계 젊은이들에게 케이 팝에, 케이 e스포츠까지 각인시켰다. 이미 롤드컵 결승전의 오프닝 무대는 미 슈퍼볼보다 많은 시청자 수를 기록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글로벌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내달 15일부터는 여수엑스포컨벤션 센터에서는 3회 한중일 e스포츠 대회가 열린다. 그것도 한국 정부의 주도로 말이다. 이는 오락 게임이 더 이상 숨어서 하는 놀이가 아니라 축구와 야구처럼 떳떳한 스포츠 반열에 확실히 올라섰다는 증거다. 해당 대회는 한중일 3국의 우호를 다지고 글로벌 시장에서 e스포츠 주도권을 갖기 위한 목적으로 열리고 있다. 그러나 1회는 중국, 2회는 일본이 우승을 하면서 정작 e스포츠 종주국이라 불리는 한국은 우승하지 못했기 때문에 올해는 반드시 우승을 하겠다는 목표이다. 


     태권도와 같이 e스포츠의 종주국은 한국이다. 세계 최초로 프로게이머 시합을 방송으로 중계를 시작했고, 프로팀 간의 단일종목 정규 리그를 세계 최초로 운영했다. 한국 e스포츠의 시작은 1998년 블리자드가 출시한 ‘스타크래프트’가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한국이 지난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스타크래프트는 비교적 낮은 컴퓨터 사양에서도 즐길 수 있어 2000년대 인터넷 붐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었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10년동안 중국과 일본의 도전이 거세졌다 .‘종주국’ 한국, ‘신흥강자’ 중국, ‘뒤쫓는’ 일본의 구도가 흥미진진해졌다. 중국 정부는 대표 게임 기업인 텐센트를 필두로 e스포츠 시장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중국 e스포츠 산업은 또 한 번 성장 기회를 맞았다. 일본도 내년 e스포츠 시장 규모를 1700억원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걸음마 단계에서 벗어나 한국과 중국을 뒤쫓고 있다. 일본에서도 2018년 ‘e스포츠 원년’을 선포한 뒤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전세계 게임 산업 규모는 322조 4000억원에 이른다. 이처럼 부모님 몰래 숨어서 했던 그 오락이 지금은 당당한 스포츠 산업으로 우뚝 섰다. 현실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투수인 루카스 지올리토(클리블랜드 가디언스)는 등판 전날 꼭 야구 컴퓨터 게임 ‘MLB 더 쇼’를 한다고 한다. 일종의 시뮬레이션으로, 실제 경기에서 위기를 맞으면 전날 컴퓨터 게임 속에서 호투한 공을 떠올린다.  일런 머스크도 그의 전기에서 스마트폰 게임 활용법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폴리토피아를 하면서 손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전략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게임을 통해 배웠다고 기술했다. 미 공군은 가상 비행게임을 실제 전투기 조종사 훈련에 사용한다. 이스라엘이 개발한 최첨단 장갑차 카르멜도 게임이 현실로 넘어온 경우다. 장갑차 조종석엔 파노라마 모니터와 게임 조이스틱이 있다. 18~21세 운전병이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실제 게임 디자인을 적용했다고 한다. 미국내에서는 참전 군인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데도 게임이 활용된다. 당시 끔찍했던 전장 상황을 게임 속 가상 현실로 재구성하고 환자가 게임을 하면서 당시 상황과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또, 캘리포니아대 어바인과 스탠퍼드대학에도 전문 e스포츠 팀이 있을 정도다. 


     지난 2019년 WHO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면서 코너에 몰렸던 컴퓨터 게임은 이제 현실과 결합해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 그러고보니 몇 십년전 동네 오락실 구석에서 하던 전자 오락이 전세계 주목을 받는 e스포츠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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