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필자는 올해의 마지막 칼럼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지난 일년을 뒤돌아 보면 정말이지 2023년은 인고의 한 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즐거운 일들도 있었고, 슬픈 일들, 안타까운 일들도 많아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2023년도를 시작하면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몇가지 계획을 세웠었다. 첫번째는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한해가 되길 바랬다. 다이어트는  평생 숙제와도 같아서 사실 올해만의 계획은 아니다. 그래도 새해에 또다시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고, 연초와 비교해서 연말에는 반드시 10파운드를 빼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굳건히 했었다. 그래서 달리기도 해보고, 요가도 해보고, 윗몸일으키기, 자전거타기, 아령들기, 피티 체조 등 짬짬이 운동을 했다. 그래도 별다른 진전이 없자 전문가에게 상담도 받아봤다. 그들은 운동 방법이 틀렸다, 식사 조절을 하지 않았다, 고칼로리 식품을 끊어야 한다, 밀가루와 탄수화물을 줄여야한다 등 여러 방면으로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운동을 하고 나면, 운동을 했다는 만족감으로 인해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서 더 먹게 되는 일상이 되풀이 되었고, 그러면서 필자가 깨우친 진리는 ‘먹으면 찐다’ 것이었다. 결국 매일 먹는 양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운동량이었음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연말을 맞았다. 그 결과 오히려 연초보다 5파운드가 더 늘어난 상태에서 올해를 마감하고 있다. 매달에 1파운드씩만 뺐어도 지금 이렇게 침울한 실패감에 젖어있지 않을 것인데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두번째 필자의  계획은 좋은 친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민초기에 뿌리가 없는 이민사회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인생에서 좋은 벗이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이라는 얘기들을 덧붙였다. 콜로라도에 정착한 지도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대부분 업무로 만난 사이라서 그런지 사무실 밖에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신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한국에 있는 어릴적 친구들처럼, 이 곳에서도 그런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도 떨고 커피도 마시는 아줌마들의 삶이 부럽기 시작했다. 아들이 원하는 학교에 합격해서 기뻤을 때도,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서 슬펐을 때도, 남편과 싸워서 울분을 참지못하고 있을 때에도, 딱히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가끔 허탈감에 빠지기도 했다. 이 허탈감은 나이가 들수록 좋은 친구를 한명쯤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으로 바뀌었고, 결국 올해 필자의 신년 계획에 포함시키기로 했던 것이다. 찐한 우정을 일컫는 사자성어 중에 ‘관포지교(管鮑之交)’ 라는 말이 있다. 관중과 포숙아의 변함없는 우정에서 유래된 이 말은 두터운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는 뜻이다. 관포와 포숙아처럼 서로에게 좋은 친구를 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모든 것을 신뢰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져 있다. 돌아보니 필자 스스로가 먼저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좋은 친구를 얻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또한 아쉬움이 남는다.


      세번째 신년계획은 영어공부였다. 벌써 22년 전의 일이다. 필자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대학에서 ESL 코스부터 들었다. 3개월 정도 ESL을 듣고 대학 수업을 병행하면서 1년을 보냈다. 남편과 함께 유학을 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남편보다 영어실력이 월등하다고 자만했다. 한국에서 토플과 토익 시험을 수없이 봤고, 대학원 때는 타임지에 나온 아티클을 가지고 영어로 토론하는 시간도 꾸준히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역전되었다. 남편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자정까지 시애틀의 한 주유소에서 일을 했다. 하루종일 한국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하는 외진 곳에 있는 주유소였는데, 그 때문인지 1년쯤 지나자 남편의 영어실력은 일취월장(日就月將)해 있었다. 그리고 2년 후 덴버로 이주하면서 필자는 한인사회에서 주로 한국사람을 만났고, 남편은 학교를 다니면서 미국인을 상대로 하는 가게에서 일을 계속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필자는 그대로인 듯한데, 남편의 영어실력은 눈부시게 발전해 있었다. 미국인 회계사와 보험사, 부동산업자, 변호사와 이야기하는 것도 문제가 없었고, 심지어 미국 TV 쇼프로를 보면서 때에 맞춰 웃을 수도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갑자기 조급증이 밀려왔다. 그래서 필자는 작년에 CU볼더 대학원의 강의를 줌으로 듣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수업도 한학기만 듣고 중단했다. 신문사 일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올 초에는 학교에서 하는 수업은 아니더라도 매일매일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는 전화기에 매일 오후 2시에 알람을 맞춰놓았고, 알람이 울리면 30분 정도 GRE 교습책을 보는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이 계획도 너무 원대했을까, 이또한 실천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보통 후회를 바람직하지 않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에디트 피아프, 에미루 해리스, 로비 윌리엄스 등 ‘후회 없이 사는’것을 노래한 아티스트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후회가 매우 유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퀸스 벨파스트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에이단 피니는 “인생에서 후회하지 않겠다는 것은 매우 그릇된 생각”이라고 말한다. 후회는 의사 결정을 개선해주는 메커니즘이며, 자신의 전략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신호라고 말이다.  또, 워런버핏은 “위험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데서 온다(Risk comes from not knowing)”고 했다. 잠시 멈춰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후회해야만 인생 전체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후회는 우리를 몹시 기분 나쁘게 만든다. 하지만, 많이 늦지 않은 후회는 더 나은 내일로 도약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동포 여러분들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어떤 후회의 힘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후회의 재발견으로, 다가오는 새해에는 다시 다짐하고 그리고 변화하면서, 후회의 폭은 줄이고 희망의 보폭은 넓혀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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