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가 밝았다. 2024년은 육십갑자의 41번째 푸른색의 ‘갑’과 용을 의미하는 ‘진’이 만나 청룡을 의미하게 된다. 용은 오래전부터 물을 다스리는 신으로 여겨져 왔다. 사람들은 용이 물 속에 살면서 물과 바람을 일으켜 비를 내리게 한다고 믿었다. 그렇다보니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연현상을 다스리는 만큼 여러 신 중에서도 위상이 가장 높았다. 그래서 농부들은 가뭄이 들 때 용신에게 기우제를 올렸고, 어부들은 고기를 많이 잡게 해달라며 용왕에게 풍어제를 지냈다. 용은 왕의 상징이기도 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라는 것이다. 조선 태조 어진에서 볼 수 있듯이 청색 곤룡포의 가슴과 양쪽 어깨에는 용을 수놓아 권위를 나타냈다. 동양 고전 속의 청룡은 힘과 지혜의 상징으로 불리면서 새로운 시작과 변화, 성장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신비스러운 존재로 그려진다. 각종 권위있는 상의 이름에도 청룡 두 글자를 따서 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청룡영화상이 있으며, 청룡기를 두고 경쟁하는 스포츠도 있다. 모두 청룡은 최고의 명예를 상징한다. 누군가 성공했을 때 우리는‘용됐다’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상상 속 동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십이지 동물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위상 덕분이다. 이처럼 열두 띠 중 가장 강력한 상징성을 가진 푸른 용은 신성한 존재로, 힘차고 진취적인 성향의 상징이다. 무엇보다 현대적 해석에 제일 걸맞은 청룡의 의미는 용기와 도전, 그리고 창의적 사고가 아닌가 싶다.


    필자는 용기와 도전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본 적이 있다. 세계 최고 박물관인 바티칸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감상했던 ‘아테네 학당’이 그 첫 번째 작품이었던 것 같다. 1510년 라파엘로가 그린 벽화 아테네 학당’은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학자들이 한 곳에 모여 학문을 논하는 장면을 담았다. 작품 중심에 있는 붉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플라톤, 푸른색 옷을 입은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다. 그 주위에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디오게네스, 유클리드 등 54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달리 말하면 고대 학자들을 모아놓은 올스타 내지 크로스오버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사람들이 활동한 시기나 지역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한 자리에서 있는 게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사망할 당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조로아스터는 그리스 철학이 태동하기도 전 페르시아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라파엘로가 표현한 아카데미아 풍경에 들어있는 이 사람들은 그리스 시대의 지식인 스타들이며, 그들의 실제 모델이 된 얼굴은 자신을 포함한 르네상스기의 천재들이었다. 그림 속에서 창의적인 도전정신으로 인간의 학문과 진리를 끊임없이 성장시킨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리스 시대와 르네상스가 공유하는 지적 자부심마저 느껴진다.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5차 솔베이 회의 당시 찍었던 사진을 보면서도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이 사진에는 인류 최강자들이 다 모였다. 그래서 이 사진엔 ‘역사상 가장 똑똑한 사진’‘물리학자 어벤저스’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다.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마리 퀴리,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등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인류의 전설과 같은 물리학자들이 모여 있다. 참석자 29명 중 노벨상 수상자가 17명이다. 솔베이는 유리, 비누, 직물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알칼리성 물질의 효과적인 제조법을 공업화하여 많은 돈을 벌었고, 3년마다 솔베이 회의를 개최해 기부금을 전달하고,세계 정상급 물리학자들을 초청해 주요한 물리학 주제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이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공식 한두 개를 만든 사람들이 아니다. 보어의 양자역학은 처음 나왔을 때 몇 사람 외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이론 덕분에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같은 전자 제품들이 탄생했다. 구글은 2019년 양자 컴퓨터로 수퍼 컴퓨터가 1만 년 걸릴 계산을 3분 만에 끝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우주 만물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송두리째 바꿨다. 지금은 GPS(위성항법시스템)의 기반이기도 하다. 이 사진 속 과학자들의 창의적인 도전이 없었다면 현대는 현대일 수 없다. 여전히 19세기 정도에 머물러 있었을 수도 있다. 이들의 도전과 창의성은 세계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다. 


    새해 첫날 한국의 한 언론에서 용기와 도전, 그리고 창의성이 바탕이 된 전략으로 한국의 미래에 투자한 재미교포 김한준씨를 조명한 것을 보았다. 쿠팡, 크래프톤, 우아한형제들(배달의 민족),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당근 등은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유니콘 또는 대표 IT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인 알토스벤처스에서 초기 투자를 받았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인물이 바로 알토스벤처스 대표로 있는 그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내 스타트업이 미국에서 투자를 받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우선 미국 출자자를 설득해야 했다. 한국 스타트업이 성장해 인수합병이나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도전했고, 결국 미국 기관으로부터 1조원을 받아 한국에 투자하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고 그가 뿌린 씨앗은 거목으로 자라났다. 우아한형제들과 하이퍼커넥트는 수조원대 가치를 인정받으며 해외 기업에 인수됐고, 크래프톤과 쿠팡은 한국과 미국 증시에 각각 상장하며 수십조원 시가총액을 기록했다. 또, 그는 투자로 번 돈을 다시 한국에 쏟아붓고 있다. 지난해만도 한국내 스타트업에 3460억원을 투자했다. 


    화려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 솔베이에 모였던 인류의 과학자들, 그리고 한국의 IT 미래에 투자했던 김씨처럼, 무모해 보일 수 있는 도전과 용기는 창의적 사고를 낳고,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올 한 해 콜로라도 한인사회도 새로운 도전으로 화합의 통로를 개척하며 비상하는 해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올해의 마지막 날에는 한인사회를 화합과 번영으로 이끈  용기있는 사람들이 모여, 우리도 역사에 남을만한 솔베이형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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