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비전교회 이동훈 공동 담임목사

    2024년, 어떤 성숙한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다가 야고보서를 꺼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숙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야고보는 ‘인내’를 성숙의 표지로 제시합니다. 야고보가 제일 먼저 언급하고 있는 주제가 바로 ‘인내’였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야고보서1:2-4)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행동을 나타내 보이는 이유는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편지를 마무리 지으면서도 편지 서두에서 꺼냈던 이 주제를 다시 언급하며 편지의 결론을 맺습니다. 야고보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길이 참으라!’(be patient)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야고보서5:7-8). 야고보는 왜 당시 교회 안의 형제들을 향해 인내하라고 말합니까? 신앙생활, 교회생활 자체에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성도들은 박해와 핍박 속에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하나 때문에 죽음을 각오해야 했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당시 성도들을 향해 ‘길이 참고’ ‘길이 참아’ ‘길이 참으라고’라고 거듭거듭 인내 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인내가 뭘까요? 야고보는 인내가 무엇인가를 교훈하기 위해 오늘 본문에서 ‘인내의 예’를 세 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첫째, 인내는 기다리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첫 번째로 농부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야고보서5:7) 이 본문의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귀한 열매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고, 농부는 그 귀한 열매를 기다린다.’입니다. 식물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고 귀한 열매를 맺히도록 하는 것은 농부의 능력 밖의 일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인내의 훈련을 위해 철저하게 기다리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희망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지 합니다. 열정과 재능, 재물과 마음을 모두 바칩니다. 그러나 기다는 일을 잘 하지 않습니다. 아니 기다리는 일이 잘 안됩니다. 더 기다려야 합니다. 더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귀한 열매’ 수확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 인내는 참아 이겨내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두 번째로 선지자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야고보서5:10) 선지자들이 누구입니까? 주의 이름으로 말하는 자들입니다.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은 무고히 당하는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말씀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당하는 무수한 고난과 억울한 일들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이런 상황들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 인내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나옵니다(2-3장). 당시 소아시아의 교회들은 핍박 속에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교회들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칭찬도 하시고 책망도 하시면서 모든 핍박과 고난을 이겨낼 것을 당부하십니다. 그러면서 일곱 교회에 동일하게 축복과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의 역사는 시대 시대마다 있어왔던 고난과 핍박이라는 상황들을 인내하므로 이겨낸 역사의 결과입니다.


    셋째, 인내는 견뎌내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제시하는 세 번째는 욥이라는 한 인물의 인내입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야고보서5:11) 욥의 인내는 어떤 인내였습니까?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이 날아갔습니다, 10명의 자녀들이 하루아침에 한 곳에서 몰살을 당했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생기고, 가장 가까이서 위로 해 줄 아내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위로 한답시고 찾아온 친구들이 한없이 정죄를 합니다, 이렇게 사방으로 에워싸임을 당하는 고난의 환경에서 욥은 어떻게 인내했습니까? 이 모든 시련을 끝까지 견뎌내는 것입니다.    

 

    2024년은 인내할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리고 참아내며 이겨내고 견뎌내는 인내의 사람들이 되십시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내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성숙의 표지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인내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예수님께서 이렇게 참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브리서12:2-3). 예수님은 인내의 표상이십니다. 예수님처럼 인내하고 사시므로 이기고 견디고 참아내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인내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2024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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