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올 11월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 온통 집중하고 있다. 지명도가 떨어지는 여러 후보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결국은 트럼프와 바이든의 전쟁으로 압축된다. 4년 전에 치렀던 그 난리통의 연장선에 다시 서 있는 기분이다.

    콜로라도주와 메인주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출마자격을 박탈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트럼프의 인기는 높아져가고 있다. 지난 15일  대선의 첫 관문이었던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51% 과반 득표로 압승을 거두면서 대선 행보에 승기를 잡았다. 아이오와에서 첫 대선 경선이 열리는 것은 공화당의 전통이다. 그런데 올해 코커스 당일에는 북극한파로 영하 25도, 체감온도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면서 살이 에는 듯한 강추위로 도시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다.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디모인 공항에는 국내외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공화당 각 대선 주자들은 도시 곳곳에서 유세를 벌이며 한 표를 호소하는 등  아이오와의 열기는 뜨거웠다. 결과는 혹한 속에서도 투표하는 열성 지지자들에게 달려 있었는데, 결국 트럼프는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으면서 충성도 높은 지지자를 확실하게 확보하였음을 증명했다. 이번 경선에서  2위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21%), 3위는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19%)가 차지했다.

    그런데 아이오와주 코커스 결과가 나온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2위를 차지했던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돌연 후보를 사퇴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한때 '리틀 트럼프'로 불린 디샌티스 주지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유사한 극우 노선을 밟으며 공화당 내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특히 2022년 11월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해 존재감을 키우면서 대권 주자로서의 가능성을 주목받았으며 한때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앞서며 '트럼프 대항마'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과 노선은 비슷하면서도 트럼프 지지층을 흡수하지 못하고, 뚜렷한 메시지와 선거 전략 부재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로써 공화당 경선은 트럼프와 헤일리 전 대사의 양자 대결 구도로 좁혀지면서, 트럼프의 귀환은 확실해졌다.

    아이오와 경선결과 이후 민주당은 더욱 불안해졌다. 절대 마주치지 않고 싶었던 트럼프를 다시 상대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아이오와 경선 결과만 보고 불안해하기는 이르다. 더 큰 장벽이 있다.  4년 전과 비교해 볼 때, 트럼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구글 이미지에 ‘트럼프’를 검색하면 항상 화가 나 있는 얼굴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는 정적은 물론 같은 편에게도 막말과 저주를 쏟아냈다. 변덕도 심해 어제 말과 오늘 말이 다르고, 주제와 상관없이 무조건 상대방을 헐뜯어왔다. 사실이 아닌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트위터에 올렸고, 미국의 대통령을 원하는 자가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의 특성을 잊은 양 이민자 학대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극렬 지지자들이 연방 의회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켜 ‘트럼프 책임론’이 일었고,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선거 진행 방해 등으로 잇따라 수사 선상에 올랐다. 작년 91건에 달하는 혐의로 4번 기소된 그는 유세 기간 수시로 뉴욕과 워싱턴DC로 돌아가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그 트럼프다. 그런데 미 대선의 첫 선거인 아이오와주 공화당 경선 현장에서 만난 트럼프는 익숙했던 모습과 달랐다는 평가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내 경쟁자들을 지목하면서 언성을 높이지 않았고, 과격한 언사도 없었다. 현 바이든 정부의 경제 정책을 언급할 때도 논리나 표현이 정돈돼 있었다. 경선에서 압승한 뒤에도 그의 태도는 달랐다. 2·3위를 한 디샌티스와  헤일리에게 조롱 대신 “열심히 했다. 축하를 보낸다”며 했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낯설다”고  전한다. 

    정치 초년병이었던 2016년 대선 당시 그의 유세장은 질서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8년 뒤인 지금, 트럼프의 재선 캠프는 체제가 잡혔다는 분석이다. 유세장 주변의 경호부터 행사 진행 순서 등 모든 부분에서 매끄러워 보였으며, 탄탄한 조직력으로 무장해 아이오와주 외곽 도시를 샅샅이 훑으면서 조직력을 과시했다. 이번 경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캠프 관계자들은 “안심하면 안 된다”며 다시한번 내부를 단속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토요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3주년을 맞았다. 재선 도전을 천명하면서 지난 3년간의 업적을 과시하며 3주년을 이벤트화할 수도 있었겠지만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 낮은 지지율로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재선 캠페인에 기부하는 사이트 링크를 올리고서 "백악관에서 4년 더 있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 중이다. 백악관은 코로나19 방역, 인프라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 기후변화 대응, 중국과 펜타닐 대응 협력, 민주주의 강화, 동맹 복원, 총기 규제 등 행정부 성과를 홍보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적극 호응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는 11월 선거일까지 시간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바이든의 낮은 국정운영 지지율은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바이든 대통령의 2020년 대선 승리에 기여한 흑인 유권자들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지지 대열에서 이탈하면서 '집토끼'마저 잃을 분위기다. 외부 환경도 우호적이지 않다. 다음 달이면 2년이 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내 추가 지원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으며, 다수 민간인 피해에도 이스라엘을 계속 지지하는 바이든 대통령에 아랍계 미국인과 젊은 지지자들이 점점 등을 돌리고 있다.

    민주당측은 트럼프의 본성이 어디 가겠느냐면서도 “멀쩡하고 평범한 모습을 연출하는 트럼프가 유세에 자주 등장한다면 우리에겐 정말 위협적”이라며 경계하고 있다. 그러면서 트럼프에 반감을 가진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그러나 달라진 트럼프 앞에서 별다른 전략없이 ‘반트럼프’ 전략에만 의존하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반짝하는 전략이 없는 한 바이든의 재선 도전은 오히려 트럼프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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