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래 비오 본당신부 부임 “신앙생활은 기쁘게”

 

덴버 성로렌스 한인 천주교회에 본당 신부로 새로 부임한 마산 교구청 소속 노중래 비오 신부.
덴버 성로렌스 한인 천주교회에 본당 신부로 새로 부임한 마산 교구청 소속 노중래 비오 신부.

    덴버 메트로 지역의 유일한 한인 성당인 성로렌스 한인 천주교회에 마산 교구청 소속 노중래 비오 신부가 새로운 본당 신부로 부임했다. 노 신부는 지난 1월 21일 김정훈 라파엘 신부가 송별미사를 집전한 바로 다음 주인 1월 28일 주일부터 미사 집전을 시작했다.  노 신부는 1973년 경남 함양에서 출생해 중학교때까지 함양에서 지냈으며, 고등학교는 진주에서, 대학은 대구소재 대구신학교를 졸업했으며 이후 3년간 군대생활을 마치고 부산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1월 14일 마산교구청에서 신부 서품을 받은 이후 노 신부는 지난21년 동안 마산 회원동 성당과 창원 대방동 성당에서 3년간의 보좌신부를 거쳐, 군종 신부로 8년을 사목했다. 2006년부터 공군 대위로 임관받아 충주 비행단, 대구 방공 포병학교, 성남 서울공항, 수원 공군부대, 대구 K2 공군 등에서 주임신부로 사목, 전역 이후 남해 성당에서 사목을 했으며, 안식년 직후인 2018년부터 태국 파타야에서 2년간 해외교포 사목을 했으며, 덴버 성당에 부임 직전에는 마산 석전 성당에서 사목했다. 덴버 성당으로 부임한 지 한달도 채되지 않았지만 신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노 신부는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좋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며 기쁜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노 신부는 “그간 군과 다소 신자들이 적었던 규모의 성당에서 사목을 해왔기 때문에 이 곳 덴버 성당처럼 많은 신자들과 함께 전례를 드리는 것이 부담도 되지만 무척 즐겁다. 1년전 덴버 발령을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다시 해외 사목을 해야한 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호쾌한 웃음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종갓집 장손에서 신부가 되기까지 든든한 후원자 되어준 어머니

    노 신부는 종갓집의 장손이다. 대를 이어야 하는 종갓집 장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신부라는 존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하느님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응원해 준 든든한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는 가톨릭재단의 고등학교를 졸업하셨고 매운 신실하셨다. 그런데 종손인 아버지와 결혼하게 되면서, 시어머니인 할머니가 성당을 다니는 것을 많이 반대하셨다. 아버지는 제가 여섯 살 때 돌아가셨는데, 그 이후로 할머니는 어머니가 성당가는 것을 더 심하게 반대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오래된 기억을 차분히 떠올렸다. 그리고 그는 중학교 2학년까지 성당을 다니다가 공부 핑계로 냉담을 했고, 할머니의 입버릇처럼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는 종손이라는 생각에 신부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진주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주말이면 함양에서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을 들렀는데, 그 때 신부님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신부라는 사람들은 공부도 못하고, 돈도 없고, 얼굴도 못생기고,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식당에서 정말 멋진 신부님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친절한 성품에 공부도 전교 1등, 외모도 매력적인 그 신부님을 보면서, 저렇게 멋진 남자도 뭐가 아쉬워서 사제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신부의 생활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서 사제의 길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를 진솔하게 전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본격적으로 신학대학을 가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하지만 노 신부는 할머니가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아직도 어머니의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머니는, 부모는 아들이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어떤 일이든 서포트를 할 뿐, 참견할 자격이 없다” 면서 가장 염려스러웠던 할머니를 설득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폭넓은 계층의 신자들을 품을 수 있는 존경받는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조언와 함께 그런 사제가 되기 위한 길목마다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힘들었던 신학대학 생활, 고난과 기적의 시간

이렇게 시작된 신학대학 생활이었지만, 그 10년의 세월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노 신부는 “60명이 입학을 했는데, 졸업은 15명만 했을 정도로 모두에게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가까스레 신학교에 들어가긴 했지만, 중학생 이후부터 냉담을 하면서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조차 완벽하게 외우지 못한 채 첫 수업을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주님의 은총으로 전 과정을 마칠 수 있었지만, 내겐 고난과 기적의 시간이었다”면서 힘들었던 신학대학 시절을 회상했다.   

 

기쁘게 신앙생활 하는데 기여하고파. 신자들, 서로에게 먼저 다가가기를

노 신부는 덴버 성당에 와서, 가장 감격스러웠던 때가 생각났다고 한다. 첫번째는 첫 성체성사를 할 때였다. “서품을 받고 첫 미사를 집전하면서 많이 울었다. 죄많은 내가 사제직을 받아들여 성체성사를 행한다는 것에 한없이 부족함과 감사함을 느꼈다.”고 한다. 두번째는 첫 고백성사를 받았을 때였다. “처음 사제석에 앉아 신자의 고백성사를 들었다. 부족한 저한테 신자들이 진심어린 고해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과 화해시키는 중재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고 한다. 그래서 노 신부는 오직 사제만이 할 수 있는 미사(성체성사)와 고백성사에 진심을 다해 신자들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선 부활절 전까지 성당내 제도 정비와 함께 시설 정비의 시간을 갖고, 기도와 전례를 통해 신자들이 신앙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사제의 길에 대한 완벽한 자신감은 없다. 늘 부족하지만, 공동체에 생기가 돌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는데 일조하고 싶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저는 배의 선장으로서 중심을 잡을 것이고, 곧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신자들과 함께 헤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신앙생활은 기쁘게”그리고 “먼저 다가가는 공동체”를 항상 강조하고 있는 노 신부는 “김정훈 라파엘 신부님의 후임은 많이 부담스러운 자리다. 마산 교구청에서도 존경받는 선배 사제이시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김 신부님을 따라 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김 신부님께서 보내주신 격려와 응원의 말씀이 큰 힘이 되었다”면서 김 신부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덧붙였다.  한편, 마산 교구청 소속인 성로렌스 한인 천주교회는 1981년에 덴버 대교구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으며, 노 신부는 11대 본당 신부로서 앞으로 4년간 이 곳에서 사목을 하게 된다. 주소는 4310 S. Pitkin St. Aurora, CO 80015이며, 사무실 전화는 303-617-7400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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