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1945년 8월 15일 일본 식민 치하에서 해방되던 그 시절 우리 백성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는 민요 가사입니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 속지 마라일본놈 일어나고, 되놈(중국놈) 되(다시) 나온다. 조선놈 조심해라” 36년간 모진 세월을 살아내느라 모두가 상처투성이가 되어 어느 누구도 못 믿겠다는 어느 한 사람의 넋두리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민요가 되어진 거겠지요. 한 연구자료에 의하면 우리 인간은 하루에 약 200건의 거짓말에 노출이 되고, 10분에 3번 정도 거짓말을 하며 산다는 기록도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일상에서 거짓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살아가고 있다 할 것입니다. 속고 속이는 가운데 진실은 멀어지고, 우리의 마음속에 진주처럼 영롱하게 빛을 발해야 할 믿음은 점점 그 빛을 잃고 어둠 속에서 아파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만 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믿음의 조상은 야곱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다 해서 그의 이름이 야곱이 되었습니다. 발 뒤꿈치를 잡다라는 이 이름은 이후에 사기꾼, 강도, 협잡꾼으로 불려지지요. 야곱의 삶이 평생 그렇게 아버지도 속이고, 형도 속여 자기의 잇속을 챙기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후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여 자기보다 더 교활하고 간교한 라반에게 수없이 속임을 당하는 신세가 되어, 한 많은 세상을 살았습니다. 나중에 요셉이란 아들로 인해 당시에 신처럼 여겨졌던 바로왕 앞에 서는데, 바로가 야곱의 나이를 묻습니다. 그 때 야곱은 이렇게 답을 하지요. “내 나이는 130세인데, 조상님들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130년은 참으로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믿음의 조상이라 불려져야 할 사람이 평생을 속고 속이며 믿음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으니 얼마나 고달프고 상처로 얼룩진 인생을 살았겠습니까!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현재 내가 깨달아 알고 있는 죄의 자리를 떠나는 것이라 정의한 바 있습니다. 이 때, 방점은 떠나는 것에 있지 않고‘말씀을 따라’에 있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일평생 말씀을 따라 살기보다는 자기의 머리를 믿고 살았습니다. 지략과 잔꾀에 능한 사람이어서 하나님은 늘 들러리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으니, 형 에서가 야곱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400명을 이끌고 자기에게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생 또 다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야곱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 뒤 얍복 강가에 홀로 남아 긴긴 밤을 보내려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씨름을 걸어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야곱에게 씨름을 걸어 오셨을까요? 여차하면 에서의 칼을 피해 도망가야 하는데 허벅지 관절은 왜 어긋나게 하셨던 걸까요?

    야곱으로 하여금 더 이상 자기 머리가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고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가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나타난 현장이자 야곱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하여 이제야 비로소 복을 누릴 자로 그 이름이‘이스라엘’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야곱의 진짜 복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서 절뚝거리며 걷게 된 시점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진짜 복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야곱의 장애는 하나님의 심판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고, 포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관심입니다. 끝까지 책임지시겠다는 선포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두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 항복하면 하나님은 야곱이란 우리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복을 주시고 누리게 하십니다.  야곱은 더 이상 자기의 잔꾀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복을 누려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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