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는‘근친혼은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한 논란으로 여론이 뜨겁다. 법무부가 친족 간 혼인 금지 범위를 4촌 이내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헌법상 혼인 상대를 선택할 자유를 보장하려면 근친혼 금지 범위를 4촌 또는 6촌 이내로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과 ‘유교적 전통과 도덕관념에 따라 지금의 8촌 이내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금 맞붙었다.‘헌법존중론’과 ‘관습존중론’ 사이의 해묵은 논쟁이 재개된 것이다.  이러한 근친혼 범위 논의는 헌법재판소가 8촌 이내 혈족 간 혼인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보는 민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올해 말까지 법을 개정하도록 하면서 촉발되었다. 

  헌재 결정의 발단이 된 사건은 2017년 소아과 의사 A씨가 6촌 여동생 B씨에게 제기한 혼인무효 소송이었다. A씨와 B씨는 6촌 사이(A씨의 할머니와 B씨의 할아버지가 남매)인 걸 알면서도 2011년부터 미국 플로리다에서 동거하며 6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했고, 2016년 대전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나 A씨가 변심해 “어차피 6촌 결혼은 원천 무효”라며 B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B씨는 “사회적 약자인 나를 상대로 A씨가 축출이혼(유책 배우자가 무책 배우자를 쫓아내는 것)을 시도했다”고 항의했지만, 대구가정법원 상주지원 1심과 대구가정법원 2심은 모두 혼인을 무효로 판결했다. 2018년 B씨는 8촌 이내 금혼 및 혼인무효 조항이 부당하다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 사건을 다룬 헌재는 2022년 10월 ‘8촌 이내 혼인을 금한다’는 민법 809조1항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8촌 이내 혼인을 ‘무효’로 정한 민법 815조2항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쉽게 말해, 8촌 이내 혈족 간의 결혼을 금지한 건 옳지만, 이미 한 결혼을 국가나 제3자의 목소리에 따라 일괄적으로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치는 것은 과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8촌’이라는 금혼 범위가 적정한가, 지나친가를 두고 당시에도 헌재 재판관들은 치열하게 논쟁했다. 최종 결론은 다수를 점한 재판관 5명의 판단대로 “이미 결혼했거나 자녀가 있는 경우까지 혼인무효로 하는 것은 가족제도의 유지라는 입법목적에 반하므로, 혼인 취소로도 충분하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4명의 헌재 재판관은 “8촌 이내의 혈족을 알고 지내는 경우가 드물어진 만큼 혼인의 자유 침해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의견을 냈다.

    현재 혼인이 가능한 촌수는 법적으로 남남인 9촌부터다. 예컨대 고조할아버지의 친형제의 증손주나 증조할아버지의 친형제의 손주의 손주가 9촌이다. 그런데 근친혼 범위를 4촌 이내로 줄이면, 5촌 사이인 당숙(아버지의 사촌형제)이나 이종질(이모의 손주)과 결혼할 수 있게 된다. 유럽에선 4촌 이내 친족 결혼이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국은 19세기까지 기혼자의 5%가 사촌간 결혼이었다. 스웨덴은 4촌이 결혼을 원할 경우 당국에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유전병이 있는지 확인한 뒤 허가를 한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 문’도 사촌 누나와 결혼한 작가 자신의 경험을 적은 자전 소설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했다가 그가 죽자 다른 남동생과 결혼했다. 프랑스·영국·미국 등은 직계, 형제 자매, 숙질까지를 금혼 범위로 정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도 4촌까지로 지금의 우리나라보다 좁다. 예전의 우리 선조들의 역사에서도 근친혼은 잦았다. 신라 김유신 장군은 여동생을 훗날 왕이 되는 친구 김춘추에게 시집보낸 뒤 두 사람이 낳은 딸과 결혼했고, 고려 왕가의 가계는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막장 수준이다. 특히 태조 왕건의 많은 자녀들은 남매이자 부부였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근친혼의 목적은 권력과 부를 독점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유전적 질병이라는 큰 대가를 치러야했다. 근친 결혼으로 태어난 아기는 저체중과 발달 장애를 앓았다. 생식력도 떨어졌다. 용맹한 전사의 나라 스파르타는 무사의 혈통을 지키려고 근친혼을 고집하다가 심각한 저출생 사태에 빠졌던 것이 멸망 이유로 꼽힌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주걱턱 장애를 앓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근친혼과 관련된 부작용이다. 여기엔 과학적 근거가 있다. 자식은 부모 양쪽에서 절반씩 DNA를 받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의 혈연도는 50%다. 4촌은 12.5%다. 그러나 5촌은 6.25%, 6촌은 3.13%, 8촌은 0.78%다. 5촌만 돼도 사실상 남이다. 또, 근친 간 결혼이 곧장 유전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럽 왕가들처럼 대를 이어 결혼을 거듭할 때 문제가 된다. 오늘날 이런 식으로 결혼하는 사람은 없다. 서로 성도 다르고 부모님끼리도 전혀 모르고 평생 교류 없이 살다가 상대방과 8촌 지간인 걸 모르고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시대이다. 그래서 ‘8촌이 최소 단위인가’를 다시 생각해 볼 시점이 되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대가 변한만큼 법으로 정하는 근친혼 친족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난 주말 법무부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 중 75%가 근친혼 금지 범위는 '현행과 같은 8촌 이내'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에 찬성했다. 이러한 결과는 아직까지 근친혼의 범위를 좁히는 것은 우리의 정서에 맞지 않다는 판단에서 도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근친혼의 범위를 줄이려는 법무부의 법 개정안을 두고 성균관과 전국 유림 등도 “가족을 파괴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법이 개정되더라도 얼마나 많은 ‘합법 커플’이 탄생할지는 미지수다. 지금도 별도의 처벌 조항이 없고, 근친혼은 당사자들이 침묵하는데다, 사실혼 관계로 살아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질서 유지 vs 혼인의 자유, 이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다수의 국민들이 현행법 유지를 선택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근친혼 범위를 좁히는 작업은 아직까지 시기상조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모쪼록 대다수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부안이 마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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