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전 남동생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의 전공은 생물학이었는데 그다지 전망이 좋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었다. 필자가 서울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때 옆방에 있었던 친구가 건국대 수의학과를 다녔는데, 그녀는 취직 걱정도 없고 전망도 매우 좋아 보였다. 그래서 동생에게 수의학과로 전과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지방에서는 수의학에 대해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때여서 동생도 필자의 제안에 흔쾌히 답하지 않고 얼마동안 머뭇거렸다. 어머니에게 남동생의 전과를 강력히 얘기했을 때가 생각한다. 필자는 어머니에게 동생이 ‘수의’과로 전향하는 것이 어떠겠냐고 물었고, 엄마는 아파트 ‘수위’를 하는데도 대학 졸업이 필요하냐고 답했을 정도였으니, 당시 수의사에 대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때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고민 끝에 동생은 필자의 의견에 동의했고, 1년간 재수를 하기로 결심했고, 수의학과에 당당히 입학했다. 지금까지 20여년간 수술전문 외과의로 아주 잘 살고 있다. 그리고 한때 수의사가 한국 최고 신랑감의 직업 1위에 올랐다는 뉴스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반려견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이 커졌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개를 더이상 음식으로 보지 않고 가족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정착된 것이다.

    동물학이라고 하면 미국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소와 말의 수도 엄청나고, 대부분의 가정에서 개와 고양이를 키우기 때문에 반려동물을 향한 소중한 마음이 어느 국민보다 크다. 한국처럼 개를 이놈 저놈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지칭하는 He(그), She(그녀)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동물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큰지 잘 알 수 있다. 주말이면 줄을 서서 개공원에 들어가기 바쁘다. 요즘에는 아시아권에서도 동물에 대한 애정이 넘쳐난다. 작년 합계 출생률이 1.0으로 내려간 중국은 2018년 이미 반려동물 수가 2억 마리를 넘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대만에서는 반려동물 수가 15세 이하 아이들 수보다 더 많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해도 개 키우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수의사와 반려견에 대한 인식이 30년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세계 최악의 저출생 국가인 한국에서 개 키우는 인구는 크게 늘고 있다. 작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조사한 결과,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전체 인구의 28%였다. 이 조사를 처음 한 2010년보다 60% 증가했다. 반려동물의 75%가 개였다. 작년 한 온라인 쇼핑몰에선 개모차가 유모차보다 더 많이 팔렸다고 한다. 3년 전만 해도 개모차 33%, 유모차 67%였는데, 작년엔 57% 대 43%로 역전됐다. 10년전만 해도 개모차는 보기 힘든 용품이었는데 이제는 필수품이 되었다고 한다.

    지난주 한국 고양 킨텍스에서는 애견박람회 ‘서울 펫쇼’가 열렸다. 보도된 동영상을 보니 전시장은 사람반 개반으로 인산견해(人山犬海)를 이루었다. 박람회장 내에는“개같이 벌어 개한테 쓴다” 라는 플래카드도 걸렸다. 열심히 돈벌어서 개한테 쓴다는 얘기인데, 언뜻보면 다소 비하적 문구같지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기도 하다. 축구장 한 개 반 크기인 3400여 평 전시장에는 개 용품 판매점들이 가득 찼다. 개보험 판매점을 필두로 개옷과 개밥, 개목줄, 개모차, 개집, 개장난감, 개샴푸, 배변패드와 똥봉투까지 개와 관련된 상품들이 무궁무진했다. 녹용과 침향으로 만들었다는 개보약도 있었고 애견신문사도 부스 한 곳을 차지했다. 가장 많이 눈길을 사로잡은 제품들은 단연 수제간식이다. 습식 및 건식, 동결건조식, 화식(익힌 음식) 등 다양한 반려동물 전용 간식이 많은 전시부스를 메우고 있다. 반려동물용 영양제를 판매하는 업체도 상당했다. 하네스라고 불리는 가슴줄은 10만원이 넘는 것도 수두룩하다. 이탈리아산으로 아주 가볍고 ‘견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됐다고 했다. 한국산 가슴줄도 5만원에 육박했다. ‘개모차계의 에르메스’라는 일제 개모차는 20% 할인을 받아도 100만원이 넘었고 개가구 전문점에서는 50만원쯤 하는 개소파를 팔고 있었다. 목욕용품의 경우 많은 업체에서 유기농·천연원료를 주 홍보 요소로 내걸고 있었다. 이번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자동 온열기 밥그릇도 인기였다. 과자의 종류도 사람 먹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새우깡을 닮은 황태깡,  멍멍이용 어묵과 붕어빵, 스테이크와 오믈렛, 댕댕이 소주에 과일 디저트까지 산해진미가 모두 모였다. 주인들이 가장 관심있어 한 것은 반려견 보험이었다. 10세이상 즉 노견은 보험가입이 안된다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다. 마치 사람 백화점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다. 무엇보다 개 화장실은 실내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사람 화장실은 전시장 밖에 있었다. 이처럼 개관련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에 수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았지만, 개호텔과 개병원은 예약잡기가 힘들 정도로 불경기가 없었다. 개 관리 비용도 엄청나다. 얼마전 필자도 개 검진을 받고 초음파를 했는데 1천달러가 훌쩍 넘었다. 피뽑는 정기검진도 평균 5백달러, 이빨 치석 제거비용도 5백달러가 훌쩍 넘는다. 설사를 한다는 이유로 의사를 잠깐 보는 것도 수백달러를 지출해야 한다. 보험이 있다고 해도 수술 비용을 커버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개 진료비가 사람보다  비싸고, 개 병원 예약이 사람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달 영국 방송국에서 아이 낳지 않는 한국인 여성에 대해 분석했다. 일단 아이를 낳으면 경력 단절이 되고,  허비되는 시간이 많고, 사교육비도 높고, 집값도 비싸다는 이유를 꼽았다. 죽어라 일해도 제자리이고 희망없는 세상에서 혼자도 벅찬데, 아이까지는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안하다보니 나누어 쓸 대상도 없고, 물려줄 사람도 없으니 인생을 함께할 대상으로 개나 고양이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번 박람회에서 개를 데리고 나온 절반 이상이 젊은 여성 혹은 젊은 부부들이었다고 하니, 언론의 분석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박람회장에 걸린 ‘개같이 벌어 개한테 쓴다’는 문구가 점점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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