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장로교회 이동훈 목사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복해지길 원하지만 결국에는 행복하지 못합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그러자 스승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내가 보기엔 저 아이들은 지금 행복한 것 같은데!” “전 아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의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똑같단다.” 이렇게 말하면서 스승은 주머니에서 동전 한 줌을 꺼내 놀고있는 아이들 쪽에다 던졌습니다. 일순간 그렇게 기쁘게 놀던 아이들이 잠깐 멈칫 하더니 ‘우우’하고 동전을 주우려 달려들었습니다. 저마다 한 개라도 더 가지려고 아우성이었으며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즐거워하던 아이들이 서로 부딪혀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자, 보거라! 무엇이 아이들의 행복을 깨뜨렸느냐?” “서로 하나라도 더 가지기 위해 다퉜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툼은 왜 생겼느냐?” “욕심 때문입니다.” “네가 제대로 대답을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지고자 갈망 하지만 사람들 속에 있는 탐욕이 행복해지고자 하는 갈망을 너무 부추겨서 결국엔 지금 가지고 있던 행복마저 깨뜨리는 것이란다.”   이 이야기를 접하며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 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편 17:14-15) 여기서 언급되어지고 있는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사람’은 세상에 사는 동안에만 부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무엇으로 만족합니까? 자신들의 배를 채워 줄 재물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자식들과 그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있음으로 만족하는 자들입니다. 한마디로 소유의 넉넉함으로 만족을 누리고자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소유의 넉넉함으로 정말 만족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자식들 가르치고, 자식들에게 유산가지 남겨 줄려면 어느 정도의 물질을 소유해야 만족한 것일까요?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놓고 그 소유로 만족하고 행복해 지려는 사라들을 가리켜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제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누가복음 12:19-21)

   세상은 ‘조금만 더’ 가지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말로 우리를 유혹하여 탐심의 욕구를 발동하게 합니다. 조금만 더 돈을 모으면, 조금만 더 넓은 집에서 살면, 조금만 더 좋은 차를 사면, 내 자녀가 조금만 더 좋은 대학에 가면 만족하고 행복해 질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어는 갑부에게 신문기자가 질문했습니다. “얼마나 돈이 많이 있어야 행복할까요?” 이 갑부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조금만 더!” 그는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는 사람입니다. 물질에 대한 ‘조금만 더’는 결코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탐욕의 노예로 전략하게 할 뿐입니다. 이 세상이 가져다주는 것으로만 만족하기 위해 ‘조금만 더’ 을 외치며 사는 인생은 불행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인생살이의 마침표가 찍어지고 다시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계신 천국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다윗처럼 그 분의 형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행복자입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1%의 행복”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름대로 이렇게 각색해서 행복을 노래해 보았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시소(Seesaw) 게임과 같습니다. 행복과 불행이 반반이면 시소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행이 49%, 행복이 51%면 시소는 반드시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행복의 조건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단 1%가 빠져나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내 인생의 무게가 더 많이 불행 쪽으로 기울기 전에 약간의 ‘좋은 것들’ ‘좋은 생각들’ ‘좋은 사람들’로 얼른 채워 넣어서 다시 행복 쪽의 무게를 무겁게 해 놓아야 합니다. 약간의 좋은 것들 1%, 약간의 좋은 생각들 1%, 약간의 좋은 사람들 1%는 우리의 삶에서 아무것도 아닌 아주 사소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위해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여유, 길을 걷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에게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어 마음껏 이야길 나눌 수 있는 시간들, 매일아침 눈뜰 때 또다시 새로운 하루가 주어진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할 줄 아는 생각들, 사소한 것들에서도 ‘난 행복해’라고 느낄 수 있는 열려있는 마음들, 오늘은 버겁지만 내일은 ‘잘 될거야!’를 되 내이며 하나 둘 내 안에 소망을 쌓아가는 일들, 그리고 잔잔한 그리움까지..... 물질에 대한 ‘조금만 더’에 비하면 이것들은 정말 사소한 것일지 모르지만, 나는 오늘도 이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우리 주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행복의 시소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행복하시나요?’라고 물으면, 웃음 지으며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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