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교회 임동섭 목사

중학교 1학년 때 캔디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 ‘L제과’에서 ‘드롭프스’라는 캔디를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색깔에 따라 과일의 향기가 달랐습니다. 이 캔디는 가락지 같은 모양이었는데 마치 동전 뭉치처럼 은박지로 싸고 막대 모양으로 포장되었습니다.  이 막대와 같은 캔디가 10개씩 박스로 포장되어 50원씩 팔았습니다.

저의 친척 중 한 분이 과자가게를 하셨습니다. 제가 그 캔디를 집어 들고 50원을 지불했더니 저에게 도매가 35원에 주셨습니다. 저는 이 캔디를 많이 팔면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캔디를 어떻게 팔 것인가를 연구했습니다. 이 캔디는 시골에서 파는 과자에 비해 월등히 맛있었으므로 동네의 아이들이 한 번 맛을 본다면 사먹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골 과자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저는 막대 단위로 5원씩에 팔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한대로 캔디가 잘 팔렸습니다. 팔릴 때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도 캔디가 먹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팔고 남을 이익을 생각하면서 캔디 하나만 먹는다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캔디 하나를 먹으니 더 먹고 싶었습니다. 결국 이익만큼 캔디를 먹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사업은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두 번째 장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동네에 ‘시째(세째 아들의 사투리)’라는 1년 선배가 있었는데,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읍내 아이스케이크 제과점에 가서 35원에 아이스케이크 50개가 들어있는 케이크 통을 받았습니다. 소매가는 50원으로 정했습니다.

 아이스께끼(Ice cake) 통을 들고 운동회가 열리고 있는 H중학교로 갔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몇 명의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시간에 8개 정도 팔렸습니다. 케이크 통은 단열이 되도록 만들었지만 뜨거운 날씨에 아이스케이크가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팔기가 곤란할 정도로 많이 녹은 아이스케이크를 하나씩 먹었습니다. 한 번 아이스케이크 맛을 본 후로 계속 먹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익을 남길 만큼 아이스케이크를 먹었습니다. 이렇게 두 번째 사업도 막을 내렸습니다.

 ROTC로 근무할 때 월부 책장사인 집주인이 부대로 면회를 오셨습니다. 그 분은 부대 내에 책을 살만한 영외 거주자를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20set 정도는 팔아 드릴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 분은 정색을 하시면서 저에게 직접 팔아보라고 하셨습니다. 큰소리를 쳐놓고 보니 꽁무니를 뺄 수도 없는 상황이라 낮에는 소대장으로 퇴근 후에는 월부 책장사로 두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 책을 팔 것인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바로 ROTC 동기생들이였습니다. 전화를 걸어 저녁이나 먹자고 했습니다. 약속한 식당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동안 저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생각은 “과연 이 친구가 책을 사줄 것인가? 사 준다면 얼마짜리 책을 살 것인가?” 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와 마주 앉아 대화를 하다보면 친구로 보이지 않고 돈으로 보였습니다. 진실한 대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두 달쯤 책을 팔았습니다. 집주인에게 어느 정도 체면을 세웠다고 생각될 때에 그만두었습니다. 판매수당으로 양복 한 벌 입은 것으로 월부 책장사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거상 ‘임상옥’의 일대기를 소설화 시킨 ‘상도’를 보면 “장사는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명언이 나옵니다. ‘장사의 신’이라는 책에서 “친구가 한 명 생긴다는 것은 길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라는 명언도 나옵니다.  장사든 목회든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큰 교회 건물을 남기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목회자의 사명은 비신자를 믿어 구원받도록 인도하고, 구원받은 자를 양육 훈련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목회도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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