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으로 거리마다 시신·비명…아비규환

"하늘엔 회색빛 먼지가 가득했고, 거리엔 시신이 널려 있다."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에 갑작스런 재앙이 닥친 건 12일(현지시간) 오후 5시께. 규모 7.0의 강진은 대통령궁을 비롯해 병원과 호텔 등 큰 건물들을 무너뜨리며 삶의 터전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 이번 지진은 170만 명이 밀집해 살고 있는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강타해 피해가 더 컸다.

수천 명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매몰자가 많아 사망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현지에 있는 AP 통신원은 "거리는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고 식료품 등을 약탈하려는 사람들까지 겹쳐 아수라장"이라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부유층과 빈민층이 함께 사는 산비탈의 건물과 가옥들이 풀썩 주저앉거나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등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고 보도했다. 전기는 물론 전화 등 통신수단이 끊기고 위성 전화만 간간이 연결되는 상황이라 정확한 피해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날이 어둡도록 손전등을 비추며 시신을 수습했지만 무너진 건물에 파묻힌 채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청하는 이들 모두를 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 구호단체 '푸드 포 더 푸어(Food for the Poor)'의 라치마니 도메산트는 "포르토프랭스가 밤이 되면서 암흑천지로 바뀌었다"며 "사람들은 거리를 뛰어다니며 울부짖고 있다"고 전했다.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들어 함께 밤을 지샜다. AP 통신은 수 천명의 사람들이 함께 흐느끼거나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고 현지의 참혹한 실상을 전했다.

한편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은 13일 "아이티 유엔건물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지진으로 사망한 것 같다"고 밝혔다. 쿠슈네르 외무장관은 RTL 프랑스 현지 라디오와 인터뷰를 통해 "유엔건물은 붕괴됐고 그곳에 있던 유엔특사인 나의 친구 등 모든 사람들이 숨진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지진으로 대통령궁도 무너졌지만 르네 프레발 대통령은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사현장 모니터

◇ 아비규환, 늘어나는 사망자 =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규모가 차츰 밝혀지고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포르토프랭스의 몬타나 호텔이 무너져 200여명이 실종됐다. 산비탈에 위치한 건물과 가옥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부유층, 빈민층 모두 잔해 속에 매몰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포르토프랭스 거리에는 시신들과 구조를 기다리는 부상자들이 가득차 있었다"고 전했다. 4층짜리 아파트가 무너진 현장에서는 한 소녀가 "가족들이 안에 있다"면서 친구들과 구조작업을 벌였다. 현지의사인 루이스-제라르 기예스는 "병원에서는 많은 희생자를 모두 받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유엔 평화유지군 사령부 건물도 상당 부분 파손돼 직원 상당수가 잔해 속에 매몰됐다. 아이티와 국경을 접한 도미니카공화국, 쿠바에서도 지진이 감지됐다. 국제적십자연맹은 이번 강진으로 최대 300만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했다.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아이티 전 대통령(56)이 이번 지진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이라면서 "나와 내 아내는 국가의 편이며, 국가에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 긴급지원에 나선 국제사회 = 지진발생 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이티에 인도적인 지원을 긴급 지시, 72명으로 구성된 구호팀을 파견하기로 했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도 긴급 구호물품을 급파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콜롬비아, 멕시코 등 이웃한 중남미 국가도 지원방침을 밝혔다. 유럽연합(EU)은 300만유로(약 50억원)를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국제적십자연맹·옥스팜 등 구호단체들도 구조팀 파견과 구호물품 지원 등 긴급구호 계획을 밝혔다.

이번 아이티 강진으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 프랑스 파리 지구물리학연구소의 지진학자 얀 킹어 박사는 AFP통신에 "진원지가 매우 얕은 곳이었고, 그 때문에 피해도 광범위했다"고 말했다.
킹어 박사는 이번 지진이 카리브판과 북아메리카판이 만나 부딪치면서 발생해 수평으로 움직였으며, 지진이 발생한 단층은 전부터 잘 알려진 지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연락두절 한인7명중 2명 생존확인

아이티에서 연락두절됐던 한국인 7명 가운데 2명의 안전이 확인됐다. 외교통상부는 현지 박스 공장에서 일하는 교민 박 씨와 한 씨 등 2명과 연락이 됐다며 이들의 신변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연락이 두절된 한국인은 사업차 아이티로 건너가 무너진 호텔에 묵은 4명과 현지 사업가 1명 등 모두 5명으로 줄었다.

외교부는 이정관 재외동포영사국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사고대책본부와 현지 대책반을 서울 본부와 주도미니카 대사관에 각각 마련하는 한편, 현지 대책반장인 강성주 주도미니카 대사와 최원석 1등서기관을 아이티 현지로 급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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