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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핀란드서 꼭 봐야 했던 것

닉네임
김태훈
등록일
2019-07-12 00:08:57
조회수
266
만만한 이를 함부로 대하는 건 사람 사이나 국가 간이나 마찬가지다. 상대가 굴욕을 맛보고도 받아치기는커녕 머리를 조아리니까 그렇게 행동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지시로 만들어진 외교·안보 연구소 총재라는 이가 엊그제 "한국의 사드 배치가 중국에 실질적인 안보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걸 보며 중국이 우리를 얼마나 무시하는지 새삼 실감했다. 이어진 말은 더 가관이다. 그는 "(사드 배치를) 중국에 대한 한국의 커다란 태도 변화로 여겼기 때문에 실망했고 이에 대응했다"고 했다. 사드가 북한 핵·미사일 방어용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 안 되는 생트집을 잡아 한국을 괴롭혔다고 버젓이 실토한 것이다.

이런 무시는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중국 소설가 모옌의 대표작 '개구리'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아기 용품도 모두 준비했습니다. 하나같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한국산 아기 침대….' 중국인들 사이에 한국은 그들보다 앞선 선진국이다. 그런 나라 대통령이 찾아와 열에 여덟 번 혼밥을 하고도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했으니 얼마나 으쓱해졌겠는가. 특사로 간 정부와 여당 고위 인사도 노골적인 하대에 불쾌한 표정 한번 짓지 않았다. 이런 굴욕 외교를 하고도 제대로 대접받을 리 없다.

무릎 꿇기를 강요하는 대국에 작은 나라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번에 문 대통령이 방문한 핀란드는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 낀 소국이다. 2차 대전 이후 옛 소련은 발트 3국을 합병했지만 나란히 있던 이 나라는 그대로 뒀다. 세상은 핀란드가 소련에 비굴하게 군 덕분이라며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는 말까지 만들어 조롱했다. 그러나 소련이 핀란드를 그냥 둔 것은 가장 비굴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39년 10월 소련은 핀란드와 발트 3국에 영토 일부의 양도를 요구했다. 핀란드만 거절하자 소련은 다음 달 12만명이 지키는 이 나라를 50만 병사로 침략해 석 달 만에 무릎 꿇렸다. 겨울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에서 소련 탱크에 맞선 핀란드 대전차병 70%가 죽었다. 정작 질린 쪽은 소련이었다. 육탄으로 탱크에 뛰어들어 포신 속에 총을 들이미는 핀란드 스키부대의 용맹함에 치를 떨었다. 전쟁이 끝나고 세어보니 핀란드 병사 한 명 죽을 때, 소련 병사 여덟이 전사했다. 이어진 또 한 번의 전쟁까지 포함해 핀란드인 10만명, 소련군 50만명이 사망했다. 소련은 그 후 핀란드를 건드리지 않았다. 심지어 유럽연합 가입도 눈감아줬다.

중국 덩샤오핑은 1979년 "조그만 친구가 말을 안 들으니 엉덩이를 때려주겠다"며 베트남에 쳐들어갔다가 국민 총동원령을 내리고 저항하는 베트남의 기세에 눌려 한 달 만에 철군했다. 올해로 중·월전쟁 40년이지만 중국은 이 전쟁을 언급도 하지 않는다.

소국이 대국을 이기긴 어렵다. 그러나 큰 나라가 멋대로 굴지 못하게 할 수는 있다. 우리는 거꾸로다. 조선 말기에도 그랬다.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고종에게 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자 고종은 이를 고하려고 종묘로 향했다. 그런데 훗날 있을지 모를 청의 보복이 두려워 행차 규모를 줄이고 고작 네 명이 메는 작은 가마에 올랐다. 이렇게 비굴한 조선을 중국인들 일본인들 존중할까. 조선은 그때 이미 망한 나라였다.

화웨이 문제로 중국이 우리를 다시 겁박하는 것도 우리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궁지로 몰면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핀란드화' 대신 한국화(Koreanization)란 말이 퍼지지 않을까 두렵다.
작성일:2019-07-12 00:08:57